안녕하세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입니다.
지난 9월 7일~8일에는 '사유의 방'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사유하는 극장 <초월:transcendence>이 열렸습니다.
음악감독이자 피아니스트인 양방언과
연극계의 떠오르는 연출인 민새롬이 만나서 더욱 주목을 끌었는데요,
이번 공연에 대한 김일송 칼럼니스트의 글을 소개합니다.
음악은 사유에 날개를 달아준다
사유하는 극장 초월:transcendence
공연칼럼리스트 김일송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음악이 정신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 사유에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을. 사람들이 음악가가 되면 될수록 더욱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을.”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고단한 삶이자, 유배당한 인생”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니체는 ‘음악을 통한 사유가 가능하며, 음악에 의해 사유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기획공연 ‘사유하는 극장’은 바로 그것을 증명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혼자만의 방에서 함께하는 극장으로
‘사유하는 극장’은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사유의 방’이 개관하며,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2022년부터 시작한 일련의 자체 기획프로그램이다. ‘사유의 방’은 국보 제78호, 제83호로 지정된 반가사유상 두 점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으로, 생각에 잠긴 두 점의 조각상이 439㎡의 널따란 공간에 나란히 앉아있다. 스스로를 옥죄는 듯한 결가부좌가 아닌,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진 반가부좌의 자세는, 또한 보일 듯 말 듯 어렴풋하게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보는 이에게 평안함을 선사한다.
‘사유하는 극장’은 바로 이 상설전시 ‘사유의 방’의 연장선에 있는 공연으로, 2022년 7월 ‘요즘 것들의 사유’로 첫 시작을 알렸다. 첫 공연은 국악을 중심으로 밴드와 디제잉이 더해진 퓨전 국악공연을 지향했다. 같은 해 9월에 공연된 ‘사유의 길’은 관객 몰입형 무용 퍼포먼스로 장르적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에는 ‘음류(音流): 모든 사이에 흐르는 사유의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피아니스트 양방언의 콘서트가 진행되었으며, 올 9월 ‘초월:transcendence(이하 '초월')’ 또한 양방언의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유의 방’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양방언에 대해서는 소개가 사족일 것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 등 전방위에서 활동하며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 ‘몽골 초원의 유목제국’의 연계 공연 <몽골 초원의 바람>으로 인연을 맺었다. 한편, ‘광개토태왕릉비’와 ‘경천사 십층석탑’의 미디어파사드 전시 AR 콘텐츠에 삽입된 음악 또한 양방언의 음악이다. 협업할 때마다 그는 전시(물)에 어울리는 곡을 작곡하는 열정을 보였고, 이는 이번 공연에도 이어졌다.
요지는 사유에 답은 없다는 것. 이번 공연 <초월>을 앞두고도 비슷한 심경을 전했다. 그리고 이번 공연을 위해 ‘Lotus Flower’, ‘Invisible Light’, ‘Inner Space’ 등 세 곡을 새롭게 작곡했다. 공연에 앞서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티벳 사원에서 스님들의 독경을 들었을 때 너무 편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초월을 경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음원에 그때 녹음한 스님들의 독경을 넣었어요. 오래 전에 녹음해 두고 그동안 쓸 만한 기회가 없어 못 썼는데, 이번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겁니다.” 독경은 ‘Lotus Flower’에 삽입되었다. 사유의 방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6곡을 포함, 이번 공연에서 그는 총 15곡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경이를 경험하는 순간, 삶은 전환되고, 우리는 초월한다
공연은 총 3부로 구성되었다. 1부 Sense of Nature(자연의 감각), 2부 Sense of Connect(연결 혹은 접속의 감각), 3부 Sense of Transcendency(초월의 감각). 구성은 민새롬 연출가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그는 박지일 주연의 <크리스천스>, 손석구 주연의 <나무 위의 군대>, 이주승, 강승호 주연의 <아들 Le Fils>, 김신록, 윤나무, 손상규, 김지현이 출연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등 주로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며 굵직굵직한 작품을 섬세하게 연출해내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신뢰를 쌓아왔다.
구성에 대한 민새롬 연출의 말을 옮겨본다. “삶에서 특별한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 또한 사유라고 생각했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몇 개의 테마를 도출했던 것 같아요. 거대한 자연을 마주하거나 아이를 출산했을 때처럼 현실 세계에서 경이롭다고 이야기하는 일이 벌어질 때의 감각, 그 경이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의 인식 활동 또한 사유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생님의 곡에서 그런 경이로움을 테마로 하는 곡들, 고양감을 주는 곡을 1부에 배치하자고 제안드렸어요. 2부는 그런 격정적인 경험을 통해 우리 삶의 경험이 전환되는 시기를 맞잖아요. 그런 다른 세계로 연결이라는 의미에서 2부는 커넥트(연결)라는 테마로 제안을 드렸어요. 사유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역동성과 선생님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콘서트 곡들을 같이 구성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순간의 감각, 그 경이로움을 통해 우리의 삶이 전환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의 순간을 통해 우리는 초월적 감각을 사유하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롯한 사유를 위해, 이번 공연에서는 부수적, 혹은 보조적인 수단들을 제거했다. 비어있다시피 한 무대에는 연주자와 악기만 서 있었다. 영상과 조명이 빈구석을 채웠다. 특히 기존의 콘서트와 달리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한 마디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장을 열 때마다, 각 장의 콘셉트를 설명하며, 사유의 길을 인도하는 그의 내레이션이 추가되었다. 다소 어눌한 억양의 한국어는, 오히려 진정성, 진중함을 전달하는 기재로 작용했다.
음악가, 연출가, 재단 모두에게 새로운
결과적으로 이번 공연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역시 양방언의 음악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대중에게 익숙한 그의 음악은 ‘프론티어’처럼 듣는 이로 하여금 고양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일 것이다.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대중에게는 그것이 그의 스타일처럼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사유의 방’을 모티프로 작곡된 음악은 이전의 웅장한 음악과 결을 달리한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 발견되는 역사성, 시간성 등은 여전히 새겨져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초월>을 제목 그대로 그의 음악적 초월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로 해석할 수 있다.
민새롬 연출은 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저에게 두 가지 시사점이 있는 것 같아요. 먼저 이번 공연을 통해 양방언 선생님께서 새로운 시도를 하셨던 점이 조명이 됐으면 좋겠고, 다음으로 ‘사유의 방’이라는 전시 공간 안에 공연 프로그램이 있고, 이 프로그램이 해를 거치면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 계속 어떤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 (공연을 통해) 보였으면 좋겠어요. 전통적인 박물관의 모습이 아니라 역동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새로운 도전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기적 목표가 있다. 새로운 장르의 개발이다. 한, 혹은 여러 아티스트가 기존의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통상의 콘서트 형식이 아닌, 그렇다고 퍼포머가 등장해 연기하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통상의 연극 형식도 아닌, (연극적) 서사가 접목된 콘서트 형식의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고자 하는 데에 재단의 뜻이 있다. 이번 공연에 민새롬 연출가를 섭외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숨어 있다. 이번 공연은 이러한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무대였으며, 가능성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하이데거는 ‘사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고대 그리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물음’에서 찾았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사유란 모든 존재자가 들려주는 ‘존재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자기 안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그것들이 마음 안에 모여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이데거는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 이후, 존재의 소리를 청취하려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며, 이제 해야 할 일은 존재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일이라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니체의 생각을 더 한다면, 음악은 존재의 소리를 전하는, 그럼으로써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는 무엇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사유하는 극장’이 왔고, 또 가야할 길일 듯하다.
👇사유하는 극장 <초월> 공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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